한의사 딸·도시농부 엄마의 텃밭에서 찾은 보약 이야기

4월 두릅, 5월 민들레…‘제철 채소’야말로 최고 보약

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24/04/12 [14:58]

한의사 딸·도시농부 엄마의 텃밭에서 찾은 보약 이야기

4월 두릅, 5월 민들레…‘제철 채소’야말로 최고 보약

김혜연 기자 | 입력 : 2024/04/12 [14:58]

“몸이 찬 사람과 열 많은 사람이 지어 먹어야 할 작물이 따로 있다.” “제철 음식만 한 보약은 없다.” 경기도 파주 교하에서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들를 수 있는 한의원을 15년째 운영하고 있는 권해진 한의사의 말이다. 권 한의사는 문득 자신은 한의(韓醫)로 환자를 돌보지만 정작 가족을 돌보는 건 식의인 엄마임을 깨닫는다. 그때부터 엄마와 함께 텃밭으로 향한 지 10년째. 권해진·김미옥 도시농부 모녀는 몸에 필요한 제철 작물을 텃밭에 심고, 만들고, 먹어보면서 ‘밥이 보약’임을 몸소 체험하며 살고 있다.

 

권 한의사는 텃밭에서 직접 키운 15가지 일상 보약 이야기를 담은 책 <한의사 딸과 엄마가 텃밭에서 찾은 보약>(책이라는신화)도 펴냈다. <한의신문>에 인기리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으로, 텃밭에서 키운 15가지 작물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한의학적인 설명을 더하여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제시한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오늘도 텃밭으로 향한다”는 모녀의 ‘따뜻하고 건강한 밥상 이야기’를 간추려 소개한다.

 


 

계절 모른 채 채소 먹는 건 곧 계절을 잃어버린 몸으로 사는 것

“한의사는 침·탕약으로 환자 돌보지만 가족 돌보는 엄마는 食醫”

 

3월엔 혈당 내려주는 돼지감자, 4월엔 관절염에 좋은 두릅과 생리통 쫓는 쑥

5월엔 염증 줄여주는 민들레와 간 기능 돌보는 부추, 6월엔 위에 편한 완두콩

 

▲ 4월엔 관절염에 좋은 두릅과 생리통을 완화하는 쑥이 제철 보약이다. 

 

한국 사회가 도시화, 개인화, 초고령화 시대로 변모하면서 최근 서울시는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솔루션으로 정원 조성 계획을 내세웠다. 정원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불안 수준이 20퍼센트 낮아지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을 때 스트레스 횟수가 60퍼센트 감소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검증되면서 우리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권해진 한의사는 이 문제에 대해 늘 고민하면서 자연과 어우러져 잘 사는 법에 대해 강구했고, 그 하나의 방법으로 ‘내가 먹을 것을 직접 지어서 먹는 것’을 엄마와 함께 생활화하고 있다. 그렇게 도시농부로 산 지 10년째, 권해진 한의사는 어머니 김미옥 여사가 텃밭에서 지은 제철 채소를 먹으면서 밥이 보약이라는 가치를 믿으며 텃밭으로 향하는 일이야말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근본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사람들에게 나누고자 최근 단행본도 냈다.

 

“친정엄마가 경기도에서 텃밭 농사를 지으신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주말이면 엄마는 텃밭에 물을 주거나 모종을 심으러 가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작은 일손이나마 보탠다. 수확물이 나오면 제일 많이 먹는 사람이 나와 아이들이라서 말이다. 내가 한의사인지라 식구 중 누가 아프다고 하면 침과 탕약으로 돌봐주지만, 평소에는 엄마가 손수 키운 텃밭 작물이 나와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니 실제로 한의(韓醫)를 돌보는 분은 식의(食醫)인 엄마인 것이다.”

 

보약이 한의원에만 있을까?

 

제철 채소가 몸에 좋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이 어느 계절에 난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50년 전만 해도 마당 한쪽에 푸성귀 없는 집이 없었고, 농사짓는 부모님 댁에서 그때그때 채소를 얻어오는 집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텃밭보다는 마트 채소 코너에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제철에 나는 채소보다 하우스에서 재배된 채소를 먹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계절을 모르고 먹는 채소’라는 말이 어떻게 들리는가? 그만큼 우리나라 농업기술이 발전했다는 말로 들리는가? 아니면 풍요 속에서 ‘계절을 잃어버린 우리 몸’이라는 말로 느껴지는가?”

 

권해진 한의사는 밥상 앞에 앉아 문득 ‘이 음식은 어느 계절에 난 거지?’ 생각하다가 예전에는 흘려들었던 엄마의 말에 집중한다. “밥이 보약이지!” 그리고 계절을 모르고 채소를 먹는다는 것은 곧 계절을 잃어버린 몸으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제철에 먹는 채소’야말로 보약임을 깨닫고는, 한의사인 자신은 침과 탕약으로 환자를 돌보지만 정작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사람은 식의(食醫)인 엄마임을 고백한다. 

 

권 한의사는 그때부터 엄마와 함께 내 몸에 꼭 필요한 보약 같은 계절 음식을 생산하는 ‘텃밭’으로 향한다. 그리고 딸이 엄마와 함께 텃밭에서 찾아낸 일상 보약 15가지를 한의학적인 설명과 함께 친절하게 풀어내고 있다. 

 

혈당을 내려주는 ‘돼지감자’, 생리통을 완화해주는 ‘쑥’, 간 기능을 돌보는 ‘부추’, 위를 편하게 만드는 ‘완두’, 막힌 기운을 뚫어주는 ‘자소엽’, 방광염에 좋은 ‘옥수수’, 기관지에 좋은 ‘도라지’, 변비에 특효약인 ‘땅콩’, 감기를 낫게 하는 ‘생강’, 소화 기능을 돕는 ‘늙은 호박’, 부기에 효과적인 ‘팥’, 혈액을 순환시키는 ‘당귀’, 눈을 밝게 하는 ‘냉이’, 관절염을 완화하는 ‘두릅’, 염증을 줄여주는 ‘민들레’ 등. 텃밭에 파종할 때부터 작물을 키우는 방법이 에피소드와 함께 담겨 있어서 농사 지식을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게 돕고, <동의보감>에 근거한 제철 채소의 효능과 더불어 그 채소가 어떤 사람에게 좋고 어떤 사람에게 나쁜지 쉽게 설명해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 맞는 작물을 텃밭에 심을 수 있도록 처방해준다. 

 

그뿐인가. 직접 기른 채소를 건강하게 먹을 수 있도록 ‘엄마의 손맛 레시피’도 소개하며, 실질적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사계절 텃밭 일지’도 수록했다.

 

“새해는 1월부터 시작이지만 텃밭은 3월부터 시작된다. 1년 농사를 잘 지으려면 텃밭에 어떤 작물을 키울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 시기가 바로 3월이다. 농부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 재배 계획서 작성을 꼭 하라고 한다. 그 이유인즉슨 초보일수록 의욕이 넘쳐서 씨를 한꺼번에 뿌리다 보면 너무 많은 작물이 몰려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넝쿨이 올라가는 작물은 남의 밭에 그늘을 드리울 수 있는 우려가 있고, 작년에 심었던 작물을 같은 자리에서 키우면 영양이 부족해 잘 자라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심는 자리를 조금씩 바꿔주면서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계획을 제대로 세우는 게 중요하다. 계획을 세운 다음에는 땅을 정리해야 한다. 겨우내 쌓여 있던 낙엽, 추위에 딱딱하게 굳어 있는 흙, 수확 후에 그대로 남아 있는 배추 뿌리 등을 정리해 텃밭을 재정비해야 한다. 그렇게 한 뒤에는 퇴비를 뿌려서 흙과 잘 섞어준다. 흙에 영양분을 주는 것인데, 씨앗이나 모종을 심기 전에 미리 퇴비를 뿌리는 것은, 퇴비가 발효될 때 식물이 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 5월엔 염증 줄여주는 민들레와 간 기능 돌보는 부추가, 6월엔 위에 편한 완두콩을 섭취하는 게 좋다. 

 

내 몸에 딱 맞는 제철 채소

 

제철 채소 코너에서 장을 보고 클릭 한 번으로 음식을 배달해 먹으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삶은 편해졌을지언정 정작 우리 몸은 계절을 잃어버려 점점 나약해져만 가는 듯하다. 종합비타민, 오메가3, 루테인 등 몸을 위해 온갖 알약을 챙겨 먹어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다. 몸이 원하는 것은 영양제 한 움큼이 아니라 계절의 푸르름일지도 모른다. 

 

하여 권 한의사는 “텅 비어버린 우리 몸에 계절을 입혀주고, 제철 채소를 직접 키워 먹으며 더 건강한 삶을 살라”고 권한다. 

 

입에 맞는 음식이 나에게도 잘 맞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럴까? 사람들은 저마다 어렸을 때부터 이어져 온 식습관에 의해 기호(嗜好)가 생기고 그에 따라 입에 당기는 음식을 찾는다. 

 

권 한의사는 “입에 당기는 음식이 몸에 맞는 것이라는 얘기는 잘못된 말”이라면서 “실은 줄곧 먹어온 음식이라서 입에 당기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소화불량 등 이상 반응이 와도 그냥 지나가는 실수를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오히려 자기 몸이 점점 망가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라고 경고한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피고 몸 상태에 맞는 작물을 먹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 작물을 텃밭에 직접 심고, 요리하고, 먹기까지 한다면 식재료에 대한 불안감 없이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권해진·김미옥 모녀의 책은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작물을 스스로 처방하여 텃밭에서 지어 먹을 수 있도록 15가지 일상 보약을 두 가지의 시선으로 담았다.

 

첫째, 체질에 맞는 작물을 지어 먹을 수 있게 설명되어 있다. 사람의 체온은 일정하더라도 태생적으로 다른 체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를테면 몸이 찬 사람과 몸에 열이 많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들이 먹으면 좋은 것과 좋지 않은 음식이 따로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강은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차가운 기운을 밖으로 발산해주는 작용을 하므로 평소 몸이 찬 사람이 생강을 지어 먹으면 좋다. 반면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찬 성질의 민들레를 먹으면 좋지만, 오랫동안 많은 양을 복용하면 복통과 설사를 일으킬 수 있기에 적당하게 먹도록 권유한다.

 

“쑥은 꽃이 피기 전까지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되도록 어린 잎을 따서 먹길 추천한다. 날이 따뜻해지는 5월쯤이면 쑥들이 키가 조금 더 크면서 뻣뻣해지는데, 요리해 먹기에는 잎이 너무 질기고 맛도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못 먹는 건 아니다. 국으로 먹기에는 조금 강하지만 떡에 넣어서 먹으면 맛과 향을 즐기기에 좋다. 우리 할머니도 조금 큰 쑥으로는 인절미를 해서 가져다주셨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그때 나는 쑥보다 인절미 콩고물을 더 맛있게 느꼈던 것 같다. 쑥의 진짜 맛을 몰랐던 시절이다. 지금은 그 맛을 너무 잘 알아서 쑥을 직접 캐러 다닌다.”

 

위를 상쾌하게 하는 완두

 

권해진 한의사는 책에서 효능에 따른 작물을 지어 먹도록 쉽게 풀이하고 있다. 한의학이라 하면 한자로 된 용어 때문에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동의보감>에 근거해서 위를 편하게 만드는 완두콩 등 작물의 효능을 정확하게 설명하되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풀어서 썼다.

 

“완두가 ‘위를 상쾌하게 하고 오장육부를 이롭게 한다(快胃利五臟)’는 부분에서 나는 ‘쾌(快)’를 ‘상쾌하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6월은 해가 쨍쨍하지만 바람이 불고 덥지 않아 상쾌한 기분이 들고, 그 계절에 나는 완두는 자연의 기운을 받아 위를 상쾌하게 할 것 같아서 말이다. 가끔 소화가 안 되는 듯 꽉 막힌 것 같고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기가 싫을 때 한의원에서 침을 맞거나 소화제를 먹곤 하지 않는가. 그러고 나서 속이 좀 풀리면 꼭 죽을 찾지 않는가? 아무래도 성급히 밥을 먹었다가 다시 체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것일 게다. 이렇듯 소화가 잘 안 되는 환자들에게 나는 흰쌀죽보다는 완두콩죽을 많이 권한다. 완두가 위를 상쾌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권 한의사는 기관지에 좋은 ‘도라지’와 감기를 낫게 하는 ‘생강’을 제철 보약으로 강추한다. 그 이유는 뭘까?

 

“도라지의 쌉싸름한 맛은 ‘사포닌(Saponin)’ 성분 때문이다. 이 성분은 인삼에도 들어 있다. 모양도 비슷하고 성분도 비슷해서인지 인삼과 도라지는 자주 비교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둘은 같은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어도 전혀 다른 효능을 가지고 있다. 인삼의 사포닌에는 진세노사이드(Ginsenoside) 성분이 들어 있어서 항암, 간 보호 등의 효능이 있는 반면, 도라지의 사포닌은 염증 제거에 탁월하다.”

 

최근 사람의 얼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찾아주는 퍼스널 컬러 진단에 관심이 높다. 그러나 정작 피부색은 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지지 않던가. 권해진·김미옥 모녀의 제철 보약 이야기를 참고 삼아 나에게 딱 맞는 작물이 무엇인지 퍼스널 푸드 진단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 몸 상태에 따른 작물을 먹고 건강해져야 내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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